기댈 곳을 찾는 사람들

나는 기댈 데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동아리가, 음악이, 예술이, 과학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나는 사실 단 한 사람을 찾아왔던것이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젖은 믿음을 꽉 끌어안아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바지자락이 다 젖어 살이 부어올라도 그저 그 채로 땅을 딛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찾아왔던 그 한 사람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최근 깨달았다. 호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배관을 돌보고 예방 정비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문제를 처리하는 건 흡사 호텔시설 타이쿤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나름의 성취감이 있다. 하지만 함께 호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해 받는 감정 소모는 생각보다 더 피로하다. 호텔 시스템..

ㅅㅁ 2024.04.16 0
경로를이탈하였습니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한때 좋아했던 모 작가의 모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적도 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는 말을 곱씹고 있자니 불현듯 이 문장이 떠올랐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의 삶에는 보편적인 경로가 있다. 이 나이쯤 되는 사람에겐 결혼, 출산이 그 경로의 통과점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런 덕분에 결혼은 안 해? 애 안 낳아? 소리를 피할 수가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차피 살다가 죽는 인생 일단 되는 대로 살아가고는 있다. 다만 나는 보편적인 경로에서는 벗어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인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부고속도로를 탄다고 한다면 나는 대전에서 갑자..

철수 2024.04.09 0
감시와 처벌, 지원과 지지

인간애가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 교사라던가, 나의 직업인 사회복지 계통이라던가, 어린이집 선생님이라던가, 경찰이라던가, 의료 계통이라던가 하는 직업들 말이다. 이 직업들은 주로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며 상대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이 직종들에게는 인권이 강조된다. 위의 직업들은 직업의식이 돈벌이와 자신의 삶을 안정케 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져셔는 안되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이 대충 농땡이를 치더라도 회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 수준에 그친다면 위의 직업을 가진 사림이 농땡이를 치면 누군가의 삶이 쉽게 망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상기된 직종들은 보통 인권 및 학대 예방교육이 필수로 지정되어 있고 학대 신고 의무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도 수없이 강조된 건 학습..

산승순 2024.03.16 1
아빠와 고양이

멸치는 아빠를 아주 좋아했다. 아빠도 멸치를 좋아했다. 멸치는 우리집 고양이다. 처음 몇 년은 "그래도 난 개가 더 좋아!" 라고 하셨지만 집에서 멸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멸치도, 집에서 아빠를 제일 좋아했다. 원주 아파트 뒷산에는 화장하고 남은 멸치가 묻혀있다. 뒷산에서 제일 큰 나무 밑 양지바른 곳이다. 멸치의 묫자리를 정한것도 묻은것도 아빠였다. 멸치가 죽었을때 아빠는 정말 많이 우셨다. 그 날 멸치는 아빠가 퇴근하시기 한시간 전에 먼저 가버렸다. 멸치 얘기를 하면 아빠는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늘 한숨을 한번. 돌아가신 작은아빠 얘기를 해도 그러신다. 이번 설은 역대급으로 정신없고 피곤한 명절이었다. 광주에 돌아와서 아빠한테 전화로 제일 먼저 물어본건 요즘도 멸..

오송송 2024.02.12 0
문학이란 뭘까...

중학생때 오빠가 예전에 쓴 독후감을 베껴서 냈다가 교내에서 상을 받게 되어 시 · 도 대회에 나갔다. 학교는 대회 출전용 글짓기반을 따로 운영했는데 대회 전에는 수업시간을 빼주기도 했다. 그 시간에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학생 대여섯이 모여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 수십권을 빌려 하루종일 책에 있는 좋은 표현을 발췌하는게 전부. 하루에 얼마나 했는지 검사를 하지도 않았다. 담당 선생은 우리한테 첫날에만 조금 설명하고 곧 나갔으니까. 아마 말 잘듣는 모범생들만 모아놔서 그랬을거다. 속으론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면서도 수업 땡땡이라는 유혹을 이길수는 없었음을.. 그러다 고3때 담임 국어선생이 나에게 문학은 의미 없고 비문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언제나처럼 선생들과 사이가 안좋았던 나여서 '내가 잘..

오송송 2024.02.04 2
아빠가,

2024년 1월 17일 오후 5시 19분, 3.19kg으로 너는 태어났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너를 처음 만나던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유리 벽 수술실 안에서 바깥에 있는 나를 향해 수술실 카트에 올려져 다가오던 너를, 그렇게 나는 39년을 기다려왔다. 초록색 천에 둘러싸여 하얀 얼룩이 묻은 채 간호사의 두드림에 큰 소리로 울던 너는 그렇게 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 아이를 만나면 생각과 얼굴이 달라 실망한다고들 하던데, 너는 그때부터 그렇게 예뻤다. 뽀얗고 동그란 얼굴에 가득한 볼을 갖고 옆으로 긴 눈과 코가 나를 닮은 듯도 싶고 엄마를 닮은 듯도 싶었다. 너를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나와, 아내를 염려하는 내가 함께 있어 나는 ..

산승순 2024.01.28 0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긴 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특정한 정치적 방향성과 정당에 대한 지지의 요구를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지냈고, 그때는 좀 더 적극적인 사회변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운동권과 맥락을 같이 했고, 자연스럽게 선배들도 모두 그런 성향이었다. 그렇지만 본래의 정체성은 가톨릭 동아리였기에 그러한 성향과 별개로 생활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단 한 번도 특정한 정당의 본격적인 지지세력이 되거나 정치인을 마음먹고 응원한 적이 없다. 나의 생각과 기준에 따라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했을 뿐이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해야 한다는 요구를 종종 ..

산승순 2024.01.16 3
개신교와 가톨릭에 대하여 (1)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성당에 다녔다. 그리고 아내는 나보다 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우리 집안사람은 모두 가톨릭이고 아내 집안사람들은 모두 개신교를 다닌다. 아내는 개신교를 '다니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신학 석사를 공부했고, 오랫동안 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했다. 비종교인이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전도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전도사는 신학대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한 경우 전도사가 된다. 특히 아내가 다니는 장로교는 여성 목사가 존재하지 않는 보수적인 교단이기 때문에 전도사가 아내가 할 수 있는 최종 직분이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할 때도 아내는 전도사였다. 나는 성당에 오랫동안 다닌 사람들 중에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은 편이지만 아내는 주변에 있는 사..

산승순 2024.01.16 0
가보지 않은 길

B와 10년 넘게 만나면서도 물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이상도 하지. 애초에 물놀이라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서로 물놀이를 언급한 적도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B가 친구들과 바다에서 꽤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여, 그럼 나랑도 놀아! 이런 흐름으로 작년 여름에 제주 바다에서 첫 물놀이를 했다. 바다나 계곡에서 발만 적신 적은 몇 번 있었으나 이렇게 물 속에 뛰어들어 온 몸을 담구며 첨벙거린 것은 처음이었다. 물놀이란 게 그렇듯 당연히 재미있었다.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하고 시체처럼 둥둥 떠다니고. 너무 신나게 놀아서인지 다음날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다리에 쥐가 났다. 그렇게 놀고도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날이 바뀌고 또 물놀이를 했다..

철수 2024.01.16 0
리얼띵

1999년부터 시작되는 우리들의 맹약 Fake에 세뇌되는 멍청한 놈들은 Don’t tell ya 2000년 대한민국, 지금은 2023 Suck y’all 정권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져 Suck you all, I’ll be the ONE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줄 건가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지을까 I’m the REAL THING, That’s my favorite scene 설총이 내게 남긴 권총 매그넘 요석공주가 물려준 여섯발의 Bullet 설총의 권총에 자루 빠진 도끼에 여섯의 탄환이 기둥을 탐하네 외쳐 나무 아미 타불 외쳐 나무 아미 타불 극락왕생 You know what i’m sayin’? I’m the REAL THING, What do you think? 진리를 찾아서 설총의 이..

철수 2024.01.12 1
40

(전략) (중략) 39. 얼마 전에 유튜브 Tiny desk Concert에 U2 (정확히는 보노와 엣지)가 나와서 노래를 하길래 아니 웬 U2 이랬는데 알고 보니 U2의 새 음반이 나온 것이었다. 조금 찾아보니 신곡 작업을 한 앨범은 아니었고, 기존 곡들을 어쿠스틱으로 재편곡 한 40곡을 담은 앨범이라고 하더라. U2 사운드의 핵심은 엣지의 딜레이 기타 아닌가? 그런데 어쿠스틱? 이런 생각을 하며 딱히 노래를 더 찾아들어보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2019년 U2 내한에 갔었다. 그 시점에도 U2 노래를 안 들은 지 좀 되어서 노래 복습을 좀 하고 갔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보노와 엣지도 많이 늙었더라. 40. 아이키도(合気道,AIKIDO)를 시작했다. 제발 운동 좀..

철수 2024.01.12 0
라디오 구구

그래? 아무튼 요새는 라디오를 많이 들어. 이직하고 나서 외근이 많아 이동 중에 노래나 실컷 들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운전을 많이 하게 되니까 라디오를 더 많이 듣게 되더라. 노래만 주구장창 듣고 있으면 좀 질리더라고.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따라부르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 그걸 맨날 할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지나봐. 어쨌든 그렇게 외근을 다니면서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기 시작했어. 움직이는 패턴이 있다보니 특정 시간대의 방송들을 자주 듣게 되었지. 한편으로는 알다시피 요새 나라꼴이 이 지경인지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투리 시간에 정치 관련 유튜브들도 보기 시작했어. 그 모습이 마치 극우 유튜브를 보는 태극기 어르신 같았지. 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고,..

철수 2024.01.12 0
나는… 태어난 사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킨텍스 출장이 있었다. 일이야 뭐 그렇다치고 미국 유학을 한 멀끔하게 생긴 통역 친구와 서브컬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오랜만에 아는 동생을 만나 다짜고짜 또 서브컬쳐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아니 어째서??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더랬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사랑받을 자격은 있지 않을까 싶다.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파이팅 해야지, 파이팅 해야지.

철수 2024.01.1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