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ㅁ

기댈 곳을 찾는 사람들

호두네ㅅㅁ 2024. 4. 16. 15:33

나는 기댈 데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동아리가, 음악이, 예술이, 과학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나는 사실 단 한 사람을 찾아왔던것이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젖은 믿음을 꽉 끌어안아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바지자락이 다 젖어 살이 부어올라도 그저 그 채로 땅을 딛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찾아왔던 그 한 사람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최근 깨달았다.

 

호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배관을 돌보고 예방 정비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문제를 처리하는 건 흡사 호텔시설 타이쿤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나름의 성취감이 있다. 하지만 함께 호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해 받는 감정 소모는 생각보다 더 피로하다. 호텔 시스템은 체계적이지만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업무 간 일에만 신경 써서 더러워진 옷을 흰색과 검은색을 구분해 더티함에 던져 넣으면 세탁부가 깨끗이 세척 후 칼같이 다려서 개인번호 행거에 걸어준다. 요리사들은 조리도구 청소를 하지 않는다. 새벽에 설거지해 주시는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있다. 객실 청소부는 시간에 쫓겨 거칠게 청소 카트를 몰면서 여러 기물들을 파손하고 손님들이 고장 낸 것처럼 우리에게 수리를 의뢰한다. 세분화된 시스템 속 우리 일은 몫이 돼서 그저 쳐내면 그만이고, 나머지 값으로 남은 감정들이 여기저기 튕겨지며 업장을 시커멓게 채우는 것이 그 이유로 생각된다. 생각을 많이 하면 이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가 없다. 그냥 하루 2만보를 걸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한달 전 24년 1회차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필기시험을 합격했다. 실기시험은 미뤄두고 오늘 24년 2회차 기사 필기시험 접수를 하였다. 조금더 평안한 일자리를 기대하게 되는 이 시험접수 행위가 조금 위로가 될 것이다. 짝꿍과 차를 내려놓고 우리의 노후를 상상해 본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처럼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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