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가보지 않은 길

chxxxsoooo 2024. 1. 16. 11:29

 

B와 10년 넘게 만나면서도 물놀이를 해본 적이 없다. 이상도 하지. 애초에 물놀이라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서로 물놀이를 언급한 적도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B가 친구들과 바다에서 꽤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여, 그럼 나랑도 놀아! 이런 흐름으로 작년 여름에 제주 바다에서 첫 물놀이를 했다. 바다나 계곡에서 발만 적신 적은 몇 번 있었으나 이렇게 물 속에 뛰어들어 온 몸을 담구며 첨벙거린 것은 처음이었다. 물놀이란 게 그렇듯 당연히 재미있었다.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하고 시체처럼 둥둥 떠다니고. 너무 신나게 놀아서인지 다음날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다리에 쥐가 났다. 그렇게 놀고도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날이 바뀌고 또 물놀이를 했다. 수영장 같은 포구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허름한 임시 샤워장에 돈 몇 천원을 주고 샤워를 했다. 씻고 나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8월말의 제주 바다는 따뜻했고 조수간만의 차는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내년에 또 와서 놀자고 속닥거렸다. 

 

 

비정기적으로 국보 탐방을 한다. 뭔가 거창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대단한 건 없다. 그저 서울 소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 않은,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국보를 보러 가는 여행인 것이다. 이 여행의 장점은 이렇다. 일단 대한민국의 국보 실물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 국보 탐방을 핑계로 이루어지는 지방 여행. 이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로 가볼 일이 없던 여러 지역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딘가로 놀러갈 핑계를 만들어주는 셈.

이번에는 안동으로 떠났다. 목적은 국보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봉정사 대웅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봉정사는 극락전과 대웅전도 뛰어났지만 그 옆에 있는 영산암이 또 너무 좋았다. 그곳에 머물러 살고 싶었다. 근처에서 산채비빔밥과 간고등어를 먹고 군자마을에 갔다. 수몰 지역에 있는 고택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인데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다. 최근 본 드라마에도 이곳의 고택이 주요 장소로 나와서 안동에 온 김에 들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도산서원에 갔다. 예전에 안동에 왔을 때는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 갔었다. 그때 갔던 맘모스 제과에 이번에도 방문하여 크림치즈빵을 샀다. 지나가는 길에는 국보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가볼 일 없던 가깝고도 멀었던 여러 지역을 다녔다. 공산성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반짝임, 절로 입이 떡 벌어지던 백제금동대향로, 대한민국 중심에 우뚝 속은 탑평리 칠층석탑, 괜히 기대서게 만드는 부석사 무량수전, 가는 곳마다 유물이 가득했던 경주의 풍경 등 국보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아이키도를 시작한 지 9개월이 되어간다. 도복이란 걸 입어본 적도 없고 운동도 즐기지 않는 내가 무도 계열의 운동을 이렇게나 오래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입회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도장장님이 회원수첩을 주며 ‘이제 한 배를 타신 겁니다’ 하며 농담 같은 진담을 던졌었는데 그때만 해도 ‘뭐야.. 이러면 좀 부담스러운데.. 나중에 그만 두게 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 두기는커녕 아이키도를 못 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아이키도는 이런저런 목적을 가진 운동이 아닌 그냥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거의 매일 도장에 나가고 있고, 또 그 매일이 즐겁고 새롭다. 매일 아이키도에 관한 것들을 생각한다.

 

 

사는 게 지겹다가도 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그런 것들만 골라서 즐겨도 지겨울 틈은 없을 것이다. 해보는 싶은 건 해보려고 한다. 해봐서 손해볼 것은 없으니까.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면 된다. 2023년의 캐치프라이즈는 ‘누워있기’였지만 어쩌다보니 많이 누워있지 못했다. 물론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기는 했지만. 아무튼 천성이 게을러 바삐 움직이는 못해도 운동도 하고 알게 모르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했더라. 그래도 아직 할 게 너무나 많다. 2024년의 캐치프라이즈는 아직 못 정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울 생각은 없고 일단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웠다. 2024년에는 연극을 많이 보기로.

 

 

'철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로를이탈하였습니다  (0) 2024.04.09
리얼띵  (1) 2024.01.12
40  (0) 2024.01.12
라디오 구구  (0) 2024.01.12
나는… 태어난 사람  (0) 202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