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경로를이탈하였습니다

chxxxsoooo 2024. 4. 9. 20:02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한때 좋아했던 모 작가의 모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적도 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는 말을 곱씹고 있자니 불현듯 이 문장이 떠올랐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의 삶에는 보편적인 경로가 있다. 이 나이쯤 되는 사람에겐 결혼, 출산이 그 경로의 통과점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런 덕분에 결혼은 안 해? 애 안 낳아? 소리를 피할 수가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차피 살다가 죽는 인생 일단 되는 대로 살아가고는 있다. 다만 나는 보편적인 경로에서는 벗어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인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부고속도로를 탄다고 한다면 나는 대전에서 갑자기 국도를 타고 위로 올라가 강원도를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내 미래를 모르고 또 아무런 계획도 없기 때문에 언제 다시 갑자기 경부고속도로를 올라타 부산을 향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살다보면 언제든 샛길로 빠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샛길에서 재미난 것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최근 나의 삼천포에는 아이키도가 있다. 아이키도를 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태권도는 커녕 도복이란 걸 입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매트 위를 구르며 매일같이 수련을 하고 있다.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고 또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냥 열심히 하는 정도는 아니고 요즘은 약간 미쳐있다고 보면 된다. 타 도장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이키도든 같이 배우는 검술이든 재미를 넘어 광기에 빠진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광기의 싹을 느끼고는 있다. 이렇게 깊은 샛길로 빠져 요즘은 다른 것들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로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라고 안내음성이 나오면, '음, 저 앞에서 돌아서 다시 합류를 하면 되려나?' 이러면서 일단 계속 달려보는 느낌이었고, 지금은 안내음성이 나오든 말든 재미있어 보이는 길로 내달리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고 있으니 부산을 가는 길인데 태백까지 와버린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나는 딱히 인생계획이란 걸 세워본 적이 없고 목표도 없고 별 생각도 없다. 사실 레일이 깔리지 않은 내 인생이 슬슬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어 계속 이렇게 살아온 것을. 진짜 인생이 삼천포에 있는지 부산에 있는지 태백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일단은 달리고 있다. 달리다 보면 다시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게 되지 않겠나.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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