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송

아빠와 고양이

anhouraday 2024. 2. 12. 23:27

멸치는 아빠를 아주 좋아했다. 아빠도 멸치를 좋아했다. 멸치는 우리집 고양이다.

처음 몇 년은 "그래도 난 개가 더 좋아!" 라고 하셨지만 집에서 멸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멸치도, 집에서 아빠를 제일 좋아했다. 

 

원주 아파트 뒷산에는 화장하고 남은 멸치가 묻혀있다. 뒷산에서 제일 큰 나무 밑 양지바른 곳이다. 멸치의 묫자리를 정한것도 묻은것도 아빠였다. 멸치가 죽었을때 아빠는 정말 많이 우셨다. 그 날 멸치는 아빠가 퇴근하시기 한시간 전에 먼저 가버렸다. 

멸치 얘기를 하면 아빠는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늘 한숨을 한번. 돌아가신 작은아빠 얘기를 해도 그러신다.

 

이번 설은 역대급으로 정신없고 피곤한 명절이었다. 광주에 돌아와서 아빠한테 전화로 제일 먼저 물어본건 요즘도 멸치한테 가보시냐는 거였다. 이번에 나는 잊어버려서 못갔기 때문에 미안해서. 나 대신 자주 가시라고. "임마 아빠는 아침에도 갔다왔어." 설 다음날 아침에도 오빠랑 다녀오셨단다.

 

평범한 동산인데도 추석쯤에는 풀섶을 헤치고 들어갈 수도 없다.

멸치가 떠난 뒤에 나는 여름 풀이 얼마나 드세게, 크게 자라는지 처음 알게 됐다.

다음번에 꼭 보러 갈게 미안해. 사랑해 멸치야.

 

'오송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이란 뭘까...  (2) 20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