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승순

감시와 처벌, 지원과 지지

산승순 2024. 3. 16. 21:18

인간애가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 교사라던가, 나의 직업인 사회복지 계통이라던가, 어린이집 선생님이라던가, 경찰이라던가, 의료 계통이라던가 하는 직업들 말이다. 이 직업들은 주로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며 상대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이 직종들에게는 인권이 강조된다. 위의 직업들은 직업의식이 돈벌이와 자신의 삶을 안정케 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져셔는 안되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이 대충 농땡이를 치더라도 회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 수준에 그친다면 위의 직업을 가진 사림이 농땡이를 치면 누군가의 삶이 쉽게 망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상기된 직종들은 보통 인권 및 학대 예방교육이 필수로 지정되어 있고 학대 신고 의무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도 수없이 강조된 건 학습적인 대목보다 사회복지사의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를 포함한 돌봄 직종은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일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많아진 일은 보통 자신의 급여 인상과 이어지지 않는다. 사회복지 서비스에는 매뉴얼이나 지침이 있지만 엄격한 기준이 있지 않다. 그래서 자원을 발굴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할수록 일이 많아지고 힘들어진다. 더욱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사실 일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시설장이나 국장, 과장급이 그 대목에 예민하게 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매번 하던 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적당히 일을 하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자신이 자원을 발굴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 자체가 일이 늘어나는 것이 되고, 대상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돌봄을 더 집중적으로, 세심하게 하면 그 행동 자체가 일을 늘리고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 된다. 어린이집이나 교사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결국 해당 직종들의 동기부여는 업무적 역량 강화에 따른 개인적인 성취와 급여나 미래의 안정감이 당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직업의식과 윤리, 내가 담당하는 대상자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인본주의적인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해당 직종 종사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인간애 확보를 위한 행동과 지지가 필요하다. 다른 직종은 잘 모르겠지만 사회복지 계통은 주로 강점관점으로 대상자를 보게끔 한다. 강점관점은 클라이언트의 치료나 문제를 중시하기보다 클라이언트가 가진 능력과 강점에 집중해 자원을 활용하여 역량을 강화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강점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수많은 대상자들을 보다 보면 개인적인 가치관에 상응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대상자들이 부지기수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보아도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고 느껴지는 대상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폭행을 행하는 경우, 성희롱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강점관점과 인간애를 통한 사회복지사 마인드가 확립되지 않으면 사회복지사는 금방 소진되어 탈력한다. 최근에는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 계통에 있는 종사자들은 대상자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소속된 기관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돌보는 대부분의 직종은 의료 계통을 제외하고는 급여 수준이 좋지 못하다. 의료 기술은 '기술'로서 인정을 받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지만, 그 외의 직종들은 '생산성이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 받기 때문에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의 급여 수준에 맞추어 급여가 정해진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경제력이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복지는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사업을 하거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그 외 단체의 모금회에서 배분사업을 신청해 받는다. 그리고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며,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해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 수익사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수익구조의 일부에 한정된다. 지역에 산재한 보통의 '종합복지관'들은 그런 형태로 일부 보조금을 받아 인건비를 유지하고, 후원을 따와서 사업비를 마련한다. 그 상황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기관의 입장에서도 많은 후원을 따오거나 배분사업을 따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직종이지만 경제력에 도움을 주는 것보다 가치가 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생산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렇듯 직종과 체계 유지에 커다란 악재가 된다. 보조금이나 장기요양보험금이 재원인 경우는 일을 하며 많은 평가를 받고 인증을 받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평가 지표'의 기준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가 지표에 있지 않은 일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평가 지표는 당연히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의 자율성과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로 하여금 행정에 얽매이게 하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들이도록 한다. 하지만 평가는 필요하다.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는 사회복지시설들이 많고 인간애와 사회복지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권 및 학대 교육, 평가와 인증은 적절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모금회나 복지단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뉴스에 '모금회 횡령'을 검색하면 쉽게 기사를 볼 수 있다. 심지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10년 기부금 횡령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기부 문화를 크게 후퇴시켰다. 그 후로 개인 후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한정된 보조금은 운영비 정도로 사용되고, 모금회 배분사업이나 후원을 따오지 못하면 사회복지관은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다. 요양원이나 데이케어센터로 시선을 돌려보면 또 다른 문제들이 있다. 대형 요양 시설은 언론들의 쉬운 표적이 된다. 사건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발생되면 언론에 기사화가 되거나 운영에 큰 어려움이 닥친다. 게다가 보조금이나 장기요양보험급여의 운영은 부정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중하다. 문제는 그 '부정행위'로 판단되는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고 조사자의 자율적인 해석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그래서 최근 큰 규모의 사회복지법인은 대형 요양원의 위수탁을 받지 않으려 한다. 운영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변명을 하거나 일방적인 보호를 위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이 어려워지는 건 실제로 횡령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상자들의 삶이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도 실제로 발생하고 가정과 요양원, 요양병원, 어린이집에서의 학대 사례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생 같은 건 괘념치 않는 학교 선생님들을 우리는 어린 시절 여럿 보았다. 보호 체계가 강화되고 제약이 많아질수록 해당 문제 행위들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덩달아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소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평가 기준에 들어있지 않은 것들은 하지 않으며,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들만을 하게 된다. 질을 높이기보다 안전하게 운영을 하게 된다. 인본주의적인 시선으로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제도적인 제약과 주변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이런 반복으로 모두가 소진되고 필요한 마음을 잃어버린다. 결국 당연히 처벌이 이루어지고 문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본주의적인 마음을 토대로 대상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곳에 어떠한 방식으로 지원을 더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간애가 필요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지적을 받기보다 지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강점관점은 클라이언트에게만 적용해야 되는 게 아니라 종사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인간애의 모양과 기준은 다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애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진 직원의 인간애가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본주의적인 기준이 그러한 것뿐이다. 인권침해나 학대를 저지른다면 다르겠지만 나의 예민함이 타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타인의 예민함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제도나 기관, 개인의 한계점으로 인해 할 수 있는 대목이 한정되어 있거나 고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적절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회복지 계통의 종사자에게 인본주의적인 대목이 자격증의 기준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들어있지 않은 건 실제로 측정하기 어렵고,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는 건 어느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르다. 누군가가 돈이 필요해 일을 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내가 부족한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다 일을 하고 있음에도 때로는 나이가 들고 때로는 몸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과 같이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걸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그 사람도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행위가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더 일을 하고 누군가가 일을 덜 하고, 누군가가 예민하지 못해 예민한 사람이 더 힘들게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예민하게 일을 하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의 예민함과 타인의 예민함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일을 하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서로서로, 그리고 집단과 조직에서 지지해야 한다. 조직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가 힘들어 누군가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비난한다. 국가와 정책적 차원에서도 감시와 처벌 외 다른 대목의 지지적 정책을 제공해야 한다.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해당 직군들이 느끼는 직업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생산성이 없다며 낮은 급여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가치가 낮은 곳에는 가치가 낮아도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물을 흐리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처벌하고 돌을 던지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자리에 들어와 있지 않은 이상 누구도 속단해서 말을 할 수는 없다. 내가 윤리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내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를 때리고 감시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더 나은 삶을 가지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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